주역공부방
김 영동 (작곡가)
요즈음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일반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자연 친화적” 혹은 “환경친화적”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환경은 훼손되고 있고, 자연이 황폐화되어 가는 만큼 인간의 심성도 황폐화되어 간다는
사실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그런데 자연과 어떻게 해야 친화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도 답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예술이 자연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욱 답답한 현실이다.
간혹 지구를 살리자 라는 의미의 공연들과 노래 등은 있어 왔지만, 거의 일회성 행사로 끝나고 만 셈이다.
환경운동 단체들의 활동도 감시나 고발 차원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고,
개발의 논리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크게 못 벗어나는 듯 싶다. 여기에서 새로운 생각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알기란 매우 어렵다. 자연은 자연 된 현상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초월적 현상이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끝까지 알 수 없는 한계 속에 사는지 도 모른다.
어떤 위대한 과학이나 철학으로도 다 밝힐 수 없는 것이 자연현상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자연은 늘 그렇게 있고 자연그대로 생명을 가지고 있어,
그 생명의 힘에 의해 스스로 태어나고 소멸하면서 그렇게 있는 것이며,
자연에는 초월적인 힘이 있어서 일체를 들 부수면서 간수하는 힘이 있는 생명체이다. 라고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은 생명에서 나와 생명으로 돌아가는 순환성에 의해 자연현상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생명이란 다양성, 관계성, 순환성, 이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이 모든 것에는 영성이 포함되는데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속에 영성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간의 예술행위는 자연을 표현하는 것도 있었지만, 근자에 예술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상업적이 되었거나 되려고 한다.
더구나 대중예술에 경우 인간의 말초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팽배하여,
호흡이 아주 짧은 상업적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 된 상태다.
여기에는 오로지 언론매체와 더불어 자본의 논리만 성립될 뿐 장르의 다양성이나 개성은 이미 없어 진지 오래다.
그런데 소위 순수예술이라는 것도 이런 상황에 적극적인 면과 자포자기식인 면이 있다.
이미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대안이나 담론 자체가 없어 심지어는 공동화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예술성이라든지, 예술에 담겨있는 영혼의 문제 등의 논의는 진부한 것이 되었다.
나는 이 글에서 전통음악 속에 나타난 동양사상을 통해 이것이 자연과 어떻게 관계성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음악에 나타난 자연사상
고대의 서양음악이나, 동양음악(한국, 중국, 일본)에서, 음악은 철학자나, 사상가, 혹은 성인들에 의해 많이 이야기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음정산출을 위해 피타고라스의 비(ratio) 에 의해
현재 서양음악의 기본인 음정과 음계를 탄생케 하였고, 또,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정의를 우주의 조화라고도 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된 학문은 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을 동일한 학문 체계로 보았다.
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와 인간] 이라는 책에서 음악과 체육의 조화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덕스럽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음악의 선법까지도 덕 있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좋은 선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좋은 선법의 음악을 들려주어야 성인이 되어서도 영혼을 다스리기가 보다 쉽다는 이야기이다.
영혼 속에 “선”을 심어 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각적 예술의 형태보다도 음악교육이 그런 면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이라고 피력하였다.
또 음악은 우주와 영혼, 도덕, 더 나아가 우주내의 항성과 행성들의 결합하는 영혼의 운동에 관한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것들이 결합하는데 음악이 연결되어 소리의 실제로 드러나는 과정을 수리적이고 기하학적인 방식을 채택한 점등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동양음악에 내포되어 있는 사고는 어떠했을까? 우선 악학궤범에 있는 서문을 인용한 다음 고대 중국이나,
한국에서 음악을 만들어 가는 동양사상의 한 축인 주역과 음양 오행 사상에 의거한 음악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느낀 바가 같지 않음에 따라 소리도 같지 않아서, 기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날려 흩어지고
노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거세고, 슬픈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애처롭고, 즐거운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느긋하게 되는 것이니, 그 같지 않음을 합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은, 임금의 인도(引導 )여하에 달렸다.
인도함에는 정과사의 다름이 있으니 풍속의 성쇠 또한 여기에 달렸다.
이것이 악의 도가 백성을 다스리는데 크게 관계되는 이유이다.“
라고 조선시대 성종 임금 시절에 나온 樂學軌範(악학궤범) 서문에 인용 되어있다.
위의 글은 서양의 고대 음악에 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음악을 통한 정치에 관한 점이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음악을 다뤘다는 것은 요즈음의 현상을 바라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하겠다.
또한 律呂(율려) 라는 개념의 용어가 음악에 사용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樂記(악기))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宮(궁) 음이 어지러울 때는 그 소리가 거칠고 사나운데 君(군)이
교만하고 사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商(상) 음이 어지러울 때는 그 소리가 기울어지고 바르지 못 한데,
이는 臣(신)의 官道(관도)가 해이하여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섯 가지(宮, 商, 角, ?, 羽) 가
어지러울 때에는 서로 다투며 학대하니 이를 漫(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되는 때는 며칠 안 가서 나라가 망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금과 비교할 때 흥미롭다.
어쨌든 세상이 망하려면 음악부터 썩게 된다는 말인데, 동양에선 그렇게 보아 온 것이다. 음악이 음탕해지면
그 시대의 도덕이 타락하고 정치가 타락한다.
그러기 위해 옛날 고대 황제들은 새로운 음을 만들어 음악을 통한 가치체계나, 사회적 척도를 만들려고 힘을 썼다.
다시 악학궤범에 있는 율려 隔八相生應氣圖說(격팔상생응기도설)을 살펴보자.
옛적 황제가 곤륜산 북쪽의 해곡의 대나무로, 구멍이 고르고 두꺼운 것을 취하여,
두 마디를 잘라 그것을 불어 黃鐘(황종)의 宮(궁)으로 삼았다.
12통을 만들어 鳳凰(봉황)의 우는소리를 본 받아 수컷의 소리를 6으로 하고, 암컷의 소리를 6으로 하였는데
陽(양)의 6음을 6律(율))이라 하고 陰(음))의 6음을 6呂(려))라 하여 6률과 6려를 합하여 12율이라 부르고 그것을
12월에 분배하였다. 그래서 12음이 나오게 되고 그것은 해와 달이 하늘의 12次(차)에서 1년에 12번 만나는데,
오른편으로 도는 것을 본 받아서 聖人(성인)이 6려를 만들었고, 북두칠성의 자루가 12辰(신)으로 운행하는데,
왼쪽으로 선회하는 것을 본 받아서 성인이 6률을 만들었다. 그런 까닭에 양의 율은 왼쪽으로 선회하여
음과 합하고 음의 여는 오른쪽으로 돌아 양과 합하여,천지사방에 음양의 소리가 갖추어 졌다.”이와 같이
동양의 음은 자연과 우주와 함께 다루어졌고 이것을 통해 가장 자연적인 음을 기준음, 혹은 중심음으로 만들려고 했다.
또 각각의 12음(황종-黃鍾, 大呂-대려, 태주- 太族, 협종-夾鍾, 고선-姑洗, 중려-仲呂, ?賓-유빈, 임종-林鍾,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역-無射, 응종- 應鍾)은 12월에 배분되어 자연의 절기와 맞추려 했으며, 그것을 통한
음악들이 현재에도 제례음악에서 연주되어지고 있다. 이것은 주역의 8괘와 음양오행과 함께 배분되기도 하는데,
오행의 질료인 금, 목, 수, 화, 토,(金木水火土)는 五聲(오성)을 낳는데 오성은 物(물)에서 情(정)을 느끼고,
정이 발하여 소리가 된 것이다. 오성에서 오음이 생기는데, 그것이 궁,상,각,치,우가된다.
이것은 五星(오성)과 오행 그리고 五常(오상) 인, 인, 의, 예, 지, 신, 인체의 오장에도 관계성을 갖고 있어,
한의학에서 최고의 치료로 꼽는 율려의학이라고도 칭한다.
특히, 자연적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악기도 八音(팔음)이라 해서 팔괘와 八風(팔풍)에 맞추어 자연의 절기와 함께
맞추어 놓은 것이 재미있다. 팔음이란 소리를 만드는 8가지 자연적 재료인데, 金(금),石(석),絲(사),竹(죽),匏(포),
土(토),革(혁),木(목)을 말한다. 이 팔음은 쇠는 兌(태)괘와 창합풍, 방향은 서방에, 돌은 乾(건)괘와 不周風(불주풍),
방향은 서북방에, 실은 離(이)괘와 景風(경풍), 방향은 남방에, 대나무-震(진)괘-明庶風(명서풍), 匏(박)-艮(간)괘-
融風(융풍), 흙-坤(곤)괘-凉風(양풍)-서남방, 가죽-坎(감)괘-廣幕風(광막풍)-북방, 나무-巽(손)괘-淸明風(청명풍)-
동남방에 배합하여, 자연의 절기, 자연의 재료로 만든 악기, 그리고 방향과 바람의 모습까지도 함께 다룬 음악의
광범위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 오음의 用(용)으로 말하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음의 자리로는 좌, 우, 상, 하, 중이고,
색으로 말하면 청, 황, 적, 백, 흑이며 그 본성으로 말하면 인, 의, 예, 지, 신이다. 정으로 말하면 喜(희), 奴(노),悲( 비),
憂(우), 恐(공)이다. 오음이 천체의 운행에 있어 5氣(기)이고 地列(지열)에 있어서는 오행이요, 사람에게 있어서는
5장(비장, 폐, 심장, 간장, 신장)이니, 中聲(중성)은 머물지 않는 곳이 없다라고 되었다. 위와 같이 동양음악 및
한국전통음악은 음양론에 입각한 오행사상이 혼합된 형태로 지금도 우리의 생활 속에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다.(도표 참조)
이러한 음악론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측면으로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다. 우선 동양사회에서는 음악과 우주, 음악과 자연,
음악과 인간을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음악의 경우 물체의 파동으로부터 출발하는
음악적 정의와는 달리 예기의 악기편에 나오는 예에서 보듯이 또는 악학궤범 서문에 보이듯이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소리의 여러 가지 형태들 기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날려 흩어지고 노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거세고
슬픈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애초롭고…….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소리가 달라 사람의 마음이
결국은 음악의 질을 나타내는 셈인 것이다.
서양음악은 대체로 음향자체를 거론하는 것이지만 동양음악은 인본적이며 개성적이라 보인다.
실제로 우리음악 연주자들의 소리를 들으면 누가 연주하였고 연주경력이 어느 정도 되고, 성격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소리에 여러 가지 느낌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전통적 음악관의 저변에
깔려있는 음악은 아무나 함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은 곧 마음을 갈고 닦은 사람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율려는 성인이 만드는 것이란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 율려란 무엇일까? 律(율)은 陽(양)이고,呂(여)는 陰(음)의 개념이다. 이것 사이의 관계가 주역이고
주역의 음악적 표현이 율려이다. 그러면 우리 음악에는 음양개념의 음악만 있을까? 민간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음악에는
또 다른 독특한 3수 개념의 음악, 즉 3박자에 기초한 음악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것을 우리는 삼재론(天, 地, 人)에
의거한 전통문화 구성의 한 축으로 본다. 천, 지, 인 이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만 말하는 것일까?
수운 최제우 선생의 천지인 사상을 보면 五行(오행)은 우주의 물질적인 구성을 상징하는 것이데,
天(천)은 오행의 법칙, 기틀, 개념을 뜻하고, 地(지)는 오행의 질, 바탕, 재료, 물질, 현상적인 것을 뜻하며,
人(인)은 오행의 氣(기), 오행을 구성하고, 끌고 가고, 부수고 다시 성립시키는 주체로서의 생명을 말한다.
그러니까 삼재사상 안에는 삼라만상의 관계가 이어 지고있는 것이다. 음양은 낮과 밤, 남과 여, 해와 달,
대립된 것 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음양은 ‘一陰一陽(일음일양)이 道’라고 해서 한번 양이었던 것은 음이 되고 음이
됐던 것은 양이 되는, 네가 되고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것, 따로 따로 있는 것은 현상적인 분열이고,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것이 본성(本性)이라고 한다.
고대의 음악관에서도 말했듯이 세상이 망하면 음악부터 썩는다고 한다. 음악이 음탕해지면 그 시대의 도덕이
타락하고 정치가 부패한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하고 문화, 정치, 경제 등을 새롭게 하려고 사람들,
옛날로 말하면 성인이고 요즘으로 말하면 지식인인데 이 사람들이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음악이다.
그러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연을 보고 우주를 보아야 한다. 우주의 음양의 변화와 해와 달의 변화 자연의 변화
그리고 내 마음의 변화 인심의 변화가 어디에서 일치하는가 그 지점을 짚어서 그 것이 소리나는 音(음)이라면
그 음을 토대로 樂(악)을 만드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음악은 반드시 禮(예), 즉 춤을 기초로 한 사회적 예절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 되는 것이다.
禮樂(예악)이 일어나야 刑政(형정)이 바로 잡히고 정치와 법률이 제대로 서게 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문화?정치?경제?환경?자연 등을 말할 수 있는 것이겠다.
바로 이러한 것이 동양의 정치?문화 사상인 것이다. 이런 것의 출발은 음악이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있다.
위와 같은 우주의 조화, 자연의 질서, 인간과의 관계를 律呂(율려) 라는 말로 함축된 것이다



